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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7:31

한민족의 큰 명절 『설』 그 의미와 유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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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법이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 민족은 고유의 역법으로 명절을 지냈다.

 

설날의 의미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선대 조상과 자손이 함께 하는 아주 신성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대부분이 도시 생활의 굴레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대에 와서 설날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곧 도시 생활 오는 긴장감과 강박감에서 일시적으로나마 해방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의미도 함께 지니게 된 다. 설날은 세속의 시간에서 성스러운 시간으로 옮겨가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평소의 개인적인 세속 생활을 떠나서 조상과 함께 하며 정신적인 유대감을 굳힐 수 있는 성스러운 시간이 바로 설날인 것이다. 또한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서 국가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설날은 아주 의미 있는 날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향을 찾아 떠나고, 같은 날 아침 차례를 올리고, 또 설빔을 즐겨 입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같은 한 민족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볼 때도 설날이 가지는 의미는 공동체의 결속을 강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단순한 명절 이상의 기능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설날의 어원

 

 

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이고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설날의 어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정도의 설이 있다.

먼저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 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해에 통합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날"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連音化)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설날을 "삼가다[謹愼]"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이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설날의 유래

 

설날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고려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설날의 민속놀이

 

 

고싸움놀이

 

전남 광산군 대조면 질석리 윳돌 마을에서 매해 음력 정월 10일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서 벌이던 놀이다.

큰 줄을 꼬아 앞쪽에 고를 짓고 이것을 양쪽에서 밀어서 부딪게 한 다음 상대방의 고를 땅에 내려뜨린 쪽이 이기게 된다.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윷돌 마을이 황소가 쭈그리고 앉은 와우상이라 터가 거세기 때문에 이를 풀어주기 위해 시작하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설은 전남 일대의 큰 마을마다 퍼져있는 이야기이다. 고싸움놀이를 줄다리기 놀이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먼저 어린아이들의 고싸움으로 시작하여 다음날에는 청소년들 그리고 본격적으로 청년들의 고싸움으로 커가며 마을 간의 대항전을 벌인다.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 33호로 지정되었다.

 

 

 

 

널뛰기

 

부녀자들의 대표적인 놀이로 전국에 고루 분포하며 음력 정초를 비롯해 단오 한가위 등 큰 명절에 행해진다.

마당에 짚이나 가마니로 널밥을 만들어 놓고 기다란 널판을 얹어놓고 두 사람이 널의 양편에 각각 올라서서 널을 뛰는 놀이 이다. 널뛰기의 유래에 대해서 다만 그 놀이의 형태나 성격으로 미루어 폐쇠적 여성관이 자리 잡기 전인 고려 이전부터 전승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시대의 여성윤리는 가능한 한 여성들의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에서의 널뛰기는 비인간적 제약 아래에 있던 여성들에게 하나의 탈출구였다.

 

연날리기

 

연날리기는 세계 곳곳에서 신분 연령의 구별 없이 즐겨오는 놀이다. 대가지를 가늘게 잘라서 연살을 만들고 종이를 붙여 연을 만들고 살에 매어 바람 부는 언덕에 올라 날린다. 때로 다른 사람과 서로 연실을 부며 끊는 연싸움을 하기도 한다. 연을 날릴 때 송액영복 이란 글자를 써 붙이는데, 이것은 질병 사고 흉년 등 나쁜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이 오도록 비는 마음에서 이다. 우리나라에서 연날리기가 널리 민중에게 보급된 것은 조선시대의 영조 때라고 한다. 영조왕은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했고 또 장려하였다고 한다. 정월에 연날리기가 성행하게 된 이유는 사계절 중이 때가 연날리기에 가장 적당한 바람 인 북서풍 이 부는 계절이다.

 

 

팽이치기

 

겨울에 시내 아이들이 얼음판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치기라고도 한다. 팽이에는 아래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 만든 보통 팽이와 위, 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불팽이가 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리는데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후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는다. 지금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추억의 놀이가 되었다.

 

자료정리 =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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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지종보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3. 4. 17. 17:03

계사년 특집 민속에서 찾아본 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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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 재생, 영생의 상징 지신(지신)

 

 

 

 

 

계사년(癸巳年) 올해는 뱀의 해이다. 동양의 역법에 의하면 뱀()12지의 여섯 번째이고 육십갑자에서 을사(乙巳), 기사(己巳), 계사(癸巳), 정사(丁巳), 신사(辛巳) 5번 순행한다. ()은 시각으로는 9시에서 11, 방향으로는 남남동, 달로는 음력4월에 해당한다.

한국인의 12분의 1은 아마도 뱀띠일 가능성이 있기에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뱀과 연관을 맺고 살고 있다. 조선후기부터 민간에 크게 유행한 당사주에는 뱀띠는 용모가 단정하고 학업과 예능에 능하며 문무를 겸비하였다고 쓰여 있다. 십이지 동물로서 뱀은 다른 십이지 동물에 뒤지지 않는 대접을 받고 있었으며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운명을 같이하는 친숙한 존재였다.

파충류인 뱀은 일상생활에서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거나 흉물로 배척당하지만 민속신앙에서는 신적 존재로 위해지면서 일찍부터 다양한 풍속이 전승되고 있다.

뱀은 겨울잠을 자는 동물이다. 땅에 가장 많이 몸을 대고 살기에 땅과 밀접하며 냉혈동물이고, 독을 품고 있어 두렵다. 그런가 하면 뱀이 크면 구렁이가 되고, 이 구렁이가 더 크면 이무기가 되며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거나 어떤 계기를 가지면 용으로 승격한다는 민속체계가 있다. 뱀의 범주에는 이무기, 구렁이, 뱀이 다 포함된다.

뱀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성장할 때 허물을 벗는다.이것이 죽음으로부터 매번 재생하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불사(不死)재생(再生)영생(永生)의 상징으로 무덤의 수호신, 지신(地神), 죽은 이의 새로운 재생과 영생을 돕는 존재 인식했다. 또 많은 알과 새끼를 낳는 뱀의 다산성(多産性)은 풍요(豊饒)와 재물(財物),가복(家福)의 신이며, 뱀은 생명 탄생과 치유의 힘, 지혜와 예언의 능력, 끈질긴 생명력과 짝사랑의 화신으로 문화적 변신을 하게 된다. 우리가 뱀을 각기 문화적 맥락 속으로 상징화할 때 생긴 문화적 오해 때문이다.

 

<법화경>은 뱀의 길다란 형태와 삼각형 머리를 남근의 형태나 성적 기교로 해석해 애욕의 뿌리로 보았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뱀을 '업구렁이'라 해서 신성시하였다. 구렁이가 집에서 서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재물을 내려준다 해서 길조로 여겼다. 물론 죽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업구렁이가 집에서 나갈까 보아 걱정을 하면서 잘 모셨다. 따라서 '구렁이'라 부르지도 않고 '지킴' 또는 '지킴님'이라고 높여 불렀다. '구렁이'라 부르는 것은 금기(禁忌)였던 것이다. 이건(李建)<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 보면, "풀이 무성하고 습기가 많을 때는 뱀이 규방이나 처마, 마루 밑, 자리 아래 어디서나 기어들어와 잠잘 때 피하기가 어렵다. 섬사람들은 뱀을 보면 '부군신령(府君神靈)'이라 하여 쌀과 맑은 물과 술을 뿌리면서 빌고, 죽이지를 않았으며, 만일 뱀을 죽이면 재앙이 내려 발굼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죽는다고 알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뱀은 중국에서도 신으로 모셨다. 복희씨와 여와씨(女窩氏)는 뱀 몸뚱이에 사람의 얼굴이 린 형상이었다. 중국 사람들은 물의 신(河神)의 모습도 뱀이라고 믿었다. 일본인들도 뱀 자체를 시조신으로 여긴다. 일본을 건국한 천조대신(天照大神)의 동생 소전명존(素箋鳴尊)은 머리가 여덟 달린 뱀의 몸에서 칼을 꺼내 나라를 지키는 보검으로 삼았다. 이것이 일본 3대 국보의 하나로 전해지고 있는 천총운검(天叢雲劒)이다. 희랍신화의 최초 인간은 케크로스라는 뱀이고 헤브라이신화의 첫 여자 에와도 뱀이었다. 그리스 신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이다. 이 의술신의 딸이 들고 다니는 단장에는 언제나 한 마리의 뱀이 둘둘 말려 있었다. 이 뱀은 의신의 신성한 하인이었고, 해마다 다시 소생하여 탈피함으로서 새로운 정력을 소생시킨다는 스태미너의 심벌로 간주돼 왔다. 지금도 군의관의 뺏지는 십자가 나무에 뱀 두 마리가 감긴 도안이고, 유럽의 병원과 약국의 문장은 치료의 신, 의술의 신을 상징하는 뱀이다.

한편 뱀은 민간의료의 약용으로도 쓰인다. 약용으로 쓰는 뱀은 주로 살모사, 구렁이, 칠점사, 독사, 독뱀 등이다. 뱀은 정력강장 작용을 하고 고혈압 환자에게 혈압 하강작용을 하며, 일체의 허약성으로 오는 질환에 사용된다고 알려졌다. 뱀허물도 중요한 약재였다.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산림경제(山林經濟)등에서도 뱀 허물이 약재로 쓰인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뱀허물이 정창, 모든 상처에 파리와 구더기를 없애는데, (胞衣)가 나오지 않을 때, 경풍(驚風) 등이 쓰인다고 했다

현실 속에서의 뱀의 부정적인 인상에도 불구하고 상상 세계는 뱀의 주무대이자그 무대의 주인공이었다. 십이지 동물 가운데 뱀처럼 상상의 세계에서 많은 이야기를 가진 동물도 없었다. 한국 설화 속에서 뱀은 인간의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대리자로서 인간 내면의 여러 요소가 기묘한 동물인 뱀의 입과 몸을 빌려서 나타난다. 설화 속에서 뱀은 은혜를 갚는 선한 존재로, 복수의 화신으로, 때로는 탐욕스런 절대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래 묵은 구렁이인 이무기는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하고 싶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기다리는 인내의 상징이다. 또한 저승 세계에서 뱀은 악인을 응징하는 절대자로 나타나며, 악한 사람은 뱀이 되어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올해는 육십갑자의 계사로 검은 에 해당하는 계()와 뱀을 상징하는 사() 합쳐져 의미상으로 검은 뱀 흑사의 해이다. '()'에는'식물이 싹이 터서 한참 자란 시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 모두가 과거의 허물을 벗고 참 불자로서 다시 태어나는 계기가 되는 한해가 되기를 서원한다 .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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