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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30일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영결 및 다비식 엄수


불교 사회복지의 토대를 다진 불국당 정관 대종사의 조계종 원로회의장이 1월 30일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에서 엄수됐다.


영결법회에는 조계종 원로회의의장 대원 대종사, 일면 대종사, 원행 대종사, 자광 대종사, 도영 대종사, 정여 대종사, 암도 대종사,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교육원장 혜일 스님, 포교원장 범해 스님, 범어사 주지 보운 스님, 양재생 부산불교총연합신도회 수석부회장, 하윤수 교육감 등 사부대중이 동참해 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

조계종 원로회의 의장 대원 대종사는 영결사에서 “스님께서는 일찍이 산문에 귀의하여 불교조계종단의 최고 스승이신 동산 대선사의 슬하에서 일념정진하셔서 불조의 공안을 수득하셨습니다. 사행에 나오셔서는 종단의 중요 주지 등의 소임을 맡아 원만히 수행하여 범어사와 종단의 발전과 안정된 중흥의 기틀을 다졌고, 불교 포교적인 면에서도 현대화와 대중화에 큰 업적을 남기셨습니다”라며 스님의 대중포교 원력을 찬탄했다.

조계종 종정 성파 대종사는 원로의원 일면 대종사가 대독한 법어에서 “대종사께서는 생사대사를 료달하기 위해 출가하시어 선 · 교 · 율을 두루 익히시고 수선안거와 대중소임으로 종단의 안정과 중생교화에 큰 자취를 남기신 대선지식이셨습니다” 라며 “대종사께서는 이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원적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대종사께서 보이신 수행이력과 원적의 모습은 후학을 경책한 장군죽비 소리이며, 생사본무의 도리를 보이신 무진법문입니다”라고 스님의 높은 수행과 삶을 되새겼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교육원장 혜일 스님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어려운 이를 만나면 복지기관을 세워 돕고, 포교 현장에서는 각계각층에 적합한 방편을 쓰고자 다양한 불국토 법인을 만드셨습니다”며 “이것이 바로 대종사님의 삶이셨으며, 다시 무상의 법문을 사바에 펼치고자 열반에 드는 모습을 보이십니다”며 평생 대중포교와 불교복지 구현을 위해 방편을 마련한 대종사의 삶을 추모했다.


조사를 하는 조계종 중앙종의회 의장 주경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주경 스님은 조사에서 “종단이 정화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에는 은사 동산 대화상을 모시고 정법의 당간을 세우는 역할을 자임하시며 주저없이 청정종문으로 이끌어 주시었고, 안정과 화합의 종풍을 세운 뒤에는 가장 빠른 걸음으로 세간으로 나아가 중생교화와 전법도생의 원력을 드넓게 펼쳐 주셨습니다”며 “그러면서도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여법한 구도정진으로써 수행자의 본분을 바로 세우니 진정한 인천의 사표라 할 만하였습니다”라며 대종사의 높은 원력과 수행력은 후대의 귀감으로 자리했다고 말했다.


조사를 하는 평생 도반 은하사 회주 대성 스님

평생을 함께한 도반인 은하사 회주 대성 스님은 조사에서 “잊을 수 없는 사형님 언제나 불러도 만족하지 못한 이 소리도 고요히 독수선정에서 열반묘심의 오묘한 모습을 보여 주시던 대덕이시여! 오늘 이렇게 초연히 원적의 대도에 홀로 나아가시니 애타게 영달을 안주하길 바라던 모든 스님과 신도님들은 붉은 태양을 잃고 암흑천지에서 허덕이며 목 놓아 정관 큰스님을 불러 봅니다”며 원적에 드신 대종사의 모습을 그리며 깊은 그리움을 표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서면으로 보내온 조사에서 “대종사께서는 대한불교어린이지도자연합회를 창립하시고, 어린이 포교의 선구자로서 원력을 세우신 분입니다. 어린이들이 청년이 되고 부모가 되는 그 세월 동안 큰 스승으로 항상 그 자리를 지키셨습니다”며 “대종사께서는 ‘베푸는 공덕이 바로 복을 짓는 것입니다. 작복(作福) 없이 복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자기 제도를 위한 공부도 작복이 먼저입니다.’고 강조하셨습니다”라며 불교복지와 어린이 포교에 매진하신 대종사의 삶을 추도했다.

부산불교총연합신도회 박수관 회장은 조사에서 “스님께서 머무신 그 자리에 연꽃 향기 그윽한데, 저희는 이제 어디서 스님의 향훈을 좇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이 작별이 슬프고 비통하지만 그 슬픔의 자리에 스님을 향한 존경과 그리움을 담아 배웅해 드리면서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비오니, 스님께서도 적멸에 오래 머물지 마옵시고, 속환사바하시어 저희를 거두시는 정법의 등명을 밝혀 주옵소서”며 큰스님의 극락왕생을 발원했다.


산문을 나서는 정관 대종사 법구 행렬


스님의 법구에 거화하는 문도 스님들


불꽃으로 화한 스님의 법구

영결식 후 인로왕번을 앞세운 스님의 법구는 사부대중의 외호를 받으며 범어사 다비장으로 향했다. 문도 스님들의 거화로 스님의 법구는 지.수.호.풍으로 돌아가 영원한 대자유의 길로 들었다.

조계종 원로 불국당 정관 대종사는 1933년 1월 4일 경북 경주시 강동면(유금리 1174번지)에서 아버지 창녕조씨 병옥 선생과 어머니 밀양손씨 기윤 여사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산에서 기도하여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 하여 어릴 때 집에서 산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미군부대에서 헌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청년기에는 춘원 이광수 선생의 장편소설 원효대사를 읽고 감동받고, 누더기에 걸망을 멘 스님들의 모습을 보며 동경해 1954년 출가발심을 일으켜 부산 금정산 범어사의 하동산 큰스님을 찾아 뵙고 출가했다.

행자시절 은사이신 동산스님께서는 “경주에서 왔고 이름이 중환이니 경환이라 하자.”며 법명을 경환으로 지어 주셨다. 그러던 어느 날 큰절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다 문득 ‘뭐든지 바로 보면 안 될 것이 없을 터’라는 생각이 들어 곧바로 은사스님을 찾아 뵙고 법명을 ‘정관正觀’으로 하겠노라 말했다. 동산스님께서는 “허허, 고놈 봐라. 정관으로 하되, 혹여 실수라도 하면 그게 정관正觀이겠느냐?”라며 꾸짖으셨지만, 이내 법명을 허락하셨다.

1961년 쌍계사 주지를 역임하고 1970년 제방선원에서 14안거를 성만하고 1972년 영주암 중창불사를 시작했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스님께서는 학생회, 청년회를 창립하고 법당과 요사채(화쟁원)를 건립했다. 또한 범어사 주지를 역임하고, 사단법인 불국토 초대 이사장을 역임하며 불교사회복지의 토대를 마련했다. 정관 대종사는 불기2567년 1월 26일 오후 7시 2분 영주암 본래지당(本來知堂)에서 법랍 70년, 세수 91세로 원적에들었다.

부산 범어사= 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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