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신각 기행- 범어사와 고당 할매불교인사이드
불교와 민속: 산신각 | Posted by 불교문화전문기자 김종열 2012. 3. 6. 14:13

산신각 기행- 범어사와 고당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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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와 고당 할매

-사원 수호의 의지를 담아 금정산을 지키는 고당 할매

-금정산 고당봉 고모령신당

-범어사 산령각

-범어사 산령각 산신

-범어사 팔상전,독성각,나한전

-범어사 비로전과 미륵전 사이


부산의 주산 금정산

부산이 고향인 기자는 어려서부터 금정산과 떨어질 수 없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본 제일 큰절도 금정산 자락의 범어사였고, 얼마 전 합가를 하신 어머니의 거쳐도 바로 금정산 아래 남산동이었다. 지금은 작은 공원으로 바뀌었지만 한때는 동물원과 케이불카를 갖춘 공원이었던 금강공원 역시 금정산 아래에 있다. 부산에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과,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금정산과 연관을 맺고 살았고, 살아가고 있다.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어 내달리다 한반도 동남단 바닷가에 이르러 우뚝 솟은 봉우리를 형성한다. 해발 801미터부산의 주산 금정산이다. 최고봉은 고당봉이고 북쪽으로 장군봉, 계명봉 남으로 원효봉, 의상봉, 파리봉, 상계봉들이 백양산으로 이어진다.

금정산과 범어사는 그 이름의 유래부터 같이 한다.<삼국유사>에는 금정범어(金井梵魚)로 표기되어 있어 신라시대 이전부터 연관 지어 불린 것으로 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산 이름의 유래에 대해 ‘동래현 북쪽 20리에 금정산이 있고, 산 정상에 세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척이요 깊이가 7척 정도다. 물은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전설로는 한 마리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 하여, 금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이로 인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라 부른다.’ 라고 기록되어있다. 지금도 고당봉에서 내려다 본 금정에는 여전히 마르지 않는 푸른 샘물이 그득하다.

범어사와 고당 할매

금정산 고당봉 아래에 자리한 범어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 3대 사찰 중의 하나다. 서기678년 신라 문무왕대 의상대사가 해동 화엄십찰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 일찍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승들의 수행처로 의상대사, 원효대사, 표훈대덕 으로부터 근세의 경허,용성, 한용운, 동산스님에 이르는 선맥(禪脈)의 총본산이다. 1950년대에는 범어사 조실로 주석하던 동산스님의 주도로 불교정화운동을 편 역사적인 사찰이다. 보물 제 434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한 수많은 성보문화재가 있다.

범어사에는 고당봉과 고당 할매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먼저 금정구청이 지명확정을 위한 위원회를 개최했을 때 고당봉은 고당(高幢)과 고당(姑堂) 두 가지의 한자어가 병존하고 있었다. 위원회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산신의 대부분은 여신이었다. 따라서 금정산 고당봉에도 할미신의 전설이 내려오므로 할미 고(姑)자와 집 당(堂)자를 써 고당봉이라 확정하고 표석을 건립했다. 그럼 할미 신에 대한 전설은 무엇일까? 이 또한 두 가지로 전해오는데 하나는 하늘의 신선 할미가 고당봉에 내려와 자리를 잡고 금정산의 산신이 되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범어사와 관련된 설화로 밀양 사람 박씨 보살에 관한 이야기다. 박 보살은 일찍이 결혼하였으나 실패하고, 불가에 귀의해 범어사 화주 보살의 역할을 하였다. 박 보살은 절의 대소사만이 아니라 살림까지 도맡아 할 정도로 불법을 외호하는 삶을 살았다. 박 보살이 죽을 때가 되어 범어사 큰스님에게 유언을 남긴다. “스님. 제가 죽으면 화장하여 금정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뿌려 주십시오, 그 봉우리에 작은 집을 짓고 정월 보름과 단오날에 제를 지내 주시면 높은 곳에서 범어사를 영원히 지키겠습니다.”며 마지막 순간 까지도 범어사를 걱정하는 불심을 보였다. 큰스님은 유언대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산신각을 짓고 이름을 할미 고(姑)자와 집 당(堂)자를 써 고당이라 불렀다. 이때부터 산신각이 위치한 봉우리를 고당봉이라 불렀다는 설화다. 그러나 한때 젊은 스님이 당제를 지내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집을 훼손했는데, 그 뒤로 재앙이 끊이지 않아 다시 고모당을 고쳐지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지금은 고당봉 큰 바위 아래에 콘크리트로 지어진 1평 남짓한 작은 당집으로 존재한다. 당집 안에는 고모할미의 산신도가 걸려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산왕대신의 위패와 고모령신 위패가 나란히 놓여있다. 지금도 민간 무속 신앙인과 이곳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참배가 끊이지 않는다.

범어사의 특이한 공간 활용 법

범어사의 가람배치는 산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배치한 선조들의 지혜가 스며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서쪽으로 지장전과 팔상, 독성, 나한전이 배치되었고, 지장전 뒤편 큰 바위위에 산령각을 지었다. 서편으로는 관음전을 두었고, 석축 아래 남북으로 비로전과 미륵전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산령각에는 고모할미가 있지 않고, 일반적인 산신의 모습을 한 산신탱이 봉안되어있다. 고당 할미의 전설을 사찰내로는 들이기는 힘들었던 모양이다. 범어사 사찰 건축 중 한번 눈여겨 볼 특이한 건물이 있다. 한 채의 건물에 나란히 배치된 팔상전, 독성전, 나한전이다. 원래는 팔상전과 나한전이 독립된 건물이었다. 그 중간에는 천태문이라는 출입문이 있었다. 1905년에 중수를 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는데, 가운데 독성전은 1칸을 사용하는 구조로 문틀을 반원형으로 만든 독특한 모습이다. 원래 두 채의 건물 사이의 공간으로 보여지는데, 중수 하는 과정에서 두 건물을 이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듯하다. 두 개의 건물을 하나로 이어 새로운 건물로 탄생시킨 대목장의 기지에 감탄 할 뿐이다. 또 하나는 비로전과 미륵전 두 전각의 사이다. 원래는 처마사이로 떨어져 있어야 할 공간에 문이 두짝 달려있다. 새로운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범어사를 거쳐 간 대목장들은 사원의 작은 빈틈도 조화롭게 꾸미는 혜안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은 보제루 복원 공사가 한창이라 대웅전 앞 마당이 어수선하지만 복원이 완료 되면 예전의 오밀 조밀 하지만 당당한 가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전국 제일의 불교 도시 부산.

불교계 기자라면 누구나 부산 불자들의 놀라운 신심에 감탄을 자아낸다. 기자가 H불교신문 부산지사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2005년, 범어사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H불교신문과 범어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설선대법회 입제식 날이었다. 초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3월 5일 부산에는 100여년 만에 폭설이 내렸다. 지역의 특성상 많은 눈이 내리면 도시의 교통은 거의 마비 상태가 된다. 하지만 폭설 속에서도 3,000여명의 불자들이 선사의 사자후를 듣기위해 범어사로 모여 들었다. 눈이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한 치의 움직임도 없이 자리를 지키는 부산지역 불자들의 용맹정진에 그저 놀랄 뿐이었다. 이후 법회는 매주 토요일 총 10회에 걸쳐 진행 되었는데, 입제식의 불자들이 회향식까지 빠짐없이 참석하는 아름다운 현장이 지금도 생생하다. 요즘은 불교는 대형화의 길을 가고 있다. 어느 사찰의 신도가 얼마라더라, 방생법회에 버스가 몇 대 동원되었다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가슴 한쪽이 먹먹해 진다. 잘 못 방향을 정하면 이웃종교가 범했던 우를 우리도 격을까 걱정되는 마음은 떨칠 수 가 없다. 범어사=김종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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